보스형 리더십에 대한 오해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강력한 목표 설정과 신속한 의사결정, 효율적인 조직 통솔이 가능한 보스형 리더십은 성장을 견인한 핵심 동력이었다. 하지만 산업이 다변화되고 정보 기반 사회로 전환되면서, 유기적 협력과 소통을 강조하는 서번트 리더십이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보스형 리더십이 구시대의 유산처럼 취급되며, 그 가치를 재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리더십은 지금의 조직과 맞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보스형 리더십은 오히려 창업, 위기 극복, 혁신 추진과 같은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한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은 그런 보스형 리더십의 진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태종의 양면성

조선 제3대 국왕 태종(1367~1422)은 ‘피의 군주’라 불린다. 친구와 스승은 물론이며 나중에는 이복형제, 처남들과 사돈까지 죽였다. 이후 어진 왕의 대명사인 세종과 비교되며 그는 잔인한 보스로 평가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는 태종의 일면에 불과하다. 그는 강력한 왕권 확립을 통해 조선의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하고, 학문과 문화를 장려하여 후대 왕조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특히 부적절한 세자 양녕을 폐위하고 학문과 덕망을 갖춘 충녕대군(훗날의 세종)을 세자로 책봉한 것은 그의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세종 즉위 후에는 상왕으로 물러나 섭정을 하며 젊은 왕을 보필하고 왕권의 안정을 도왔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기틀을 확립한 ‘위대한 창업 군주’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리더십 스타일 때문일까? 하지만 같은 보스형 리더십이었던 태조 이성계, 동시기의 인물이며 성격도 비슷하고 정치적 상황도 비슷했던 영락제와 비교해보면 이들의 리더십 스타일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특별한 무언가는 무엇일까? 답은 바로 ‘절제’였다.

조선 최고의 군주, 창업군주 태종

고려말, 이성계는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잘못된 요동 정벌을 거부하고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다. 이후 여러 가지 사건을 거치며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오히려 살얼음판을 기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살아있는 왕자 중 맏이인 ‘방과’가 왕이 되어야 했지만, 당시 정도전 등의 신하들은 왕이 주도하는 나라가 아닌,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국가를 만들고자 했고, 이성계의 입장에서도 무인이었던 자신이 국가를 이끌기 위해선 관료들의 역량이 필요했기에 이 두 세력의 이해가 맞물려, 정치적 지위와 역량을 가진 왕자들이 배제되고 어린 막내아들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방석이 왕이 된다면 명분상으로 앞서는 기존 왕자들은 숙청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이방원은 선수를 쳤다. 태조가 깬 ‘적장자 원칙’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국을 장악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를 주도한 실권자인 이방원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쿠데타에 성공하고도 왜 그는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까?

이유는 난을 일으킨 명분이 ‘적장자 원칙’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권력대로라면 이방원이 왕이 되고도 남았겠지만, 그는 명분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았다. 그래서 명분대로 맏형 이방과를 왕(정종)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세제가 되어 왕위 계승의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권력은 쟁취하기도 어렵지만 권력을 정당화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로마의 ‘카이사르’나 진나라 ‘조고’의 사례처럼, 힘으로 얻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반발과 불안정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유학자이기도 했던 태종은 이를 잘 알았기에 한평생 권력을 절제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최고 자질이기도 했다.

명분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군주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은 왕조의 역사 중 사실을 가장 상세히 기록한 문서로 유명하다. 그러나 조선 초기와 후기의 실록에는 차이가 있다. 후기 실록은 기록이 제한적인 반면, 태조와 태종 등 초기 군주들의 행적은 일거수일투족까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태종의 인물상은 유난히 상세히 드러나는데, 실록 속 태종은 과거 급제자를 대충 고르거나,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냥을 강행하는 등 변덕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때로는 자제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정이 많은 왕이기도 했다. 열 살짜리 아이들이 광화문에서 ‘태종’, ‘효령’, ‘충녕’이라는 이름을 공에 붙여 놀다 잡혀온 일이 있었다. 건국 초기였기에 왕권이 불안정했고, 엄벌이 불가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태종은 “아이들 놀이인데 법도를 들이밀 필요는 없다”며 사태를 직접 무마했다.

관리의 친구 조서가 길을 잃고 왕의 침전에 들어간 일이나, 시골 선비 손귀생이 창덕궁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체포된 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규율대로라면 이들뿐 아니라 관련된 내시부, 내금부 관계자들까지 처형될 수 있었지만, 태종은 “모르고 한 일인데 그럴 필요는 없다”며 사면하거나 사건을 넘겼다.

그러나 그는 국가의 근본을 위협하는 사안에 있어서는 정이나 개인적 감정을 철저히 억제하고 실리를 따져 움직였다. 심지어 실리가 눈앞에 있어도 명분이 없다면 결정을 유보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에는 큰 실수가 없었다.

건국 초기에는 정치적 숙청이 불가피하게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명나라의 영락제는 권력 안정을 위해 무려 10만여 명을 숙청했다. 이에 비해 ‘피의 군주’로 불린 태종은 오히려 숙청을 최대한 자제한 편이다.

태종이 ‘피의 군주’로 불린 이유는 형제 방석과 방번, 그리고 처남과 사돈을 숙청했기 때문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존속살인은 극단적인 패륜 행위로 간주되기에 민심이 흔들릴 만한 일이었지만, 냉정히 보면 태종의 숙청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방석의 경우, 이미 세자로 책봉된 인물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세력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조선 초기에 필요한 인재가 줄어드는 결과가 되기에, 태종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정리하고자 방석과 이를 주도한 정도전 등을 제거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이 있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녕대군과 가까웠고, 당시 양녕의 행동이 도를 넘는 상황에서 세자 교체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민무구가 “세자 외엔 영특한 아들은 필요 없다”는 발언까지 하며 충녕대군을 제거하라는 뜻을 내비치자, 왕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숙청한 것이다.

충녕대군의 장인이자 사돈인 심온은 인품이 훌륭하고 주위의 지지가 두터웠다. 세자로 책봉된 충녕의 외척인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이는 경험이 부족한 세종의 왕권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정치문화에서 외척의 세력 집중은 곧 불충으로 여겨졌기에, 태종은 왕실의 안정을 위해 심온을 숙청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형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

태조와 태종은 모두 역량 있는 보스형 리더의 전형이었다. 전문가에게 권한을 위임하되, 최종 책임은 자신이 지는 모습에서도 닮은 점이 많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말년에 권력을 잃고 쓸쓸한 삶을 살았던 태조와 달리, 태종은 죽는 순간까지도 강력한 왕권을 유지했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바로 ‘절제’였다.

장남이 왕위를 잇는 ‘적장자 계승 원칙’은 장남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명분이 없으면 권력을 둘러싼 종친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국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조가 막내 아들 방석을 세자로 밀어붙인 것은 “내가 낳은 아들들이 아버지를 어쩌겠는가”라는 자신감, “내가 국왕인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하는 권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평소 호방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내와 절제를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면모를 보였다.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다른 형제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했지만, 이방원은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상황을 준비해 나갔다.

그는 ‘적장자 계승’이라는 명분을 활용해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은밀히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러한 이방원의 움직임을 감지한 정도전 일파는 왕자들의 사병을 제거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기획한다. 병력을 동원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그러나 조선 건국의 명분이 된 것은 바로 고려의 ‘무리한 요동 정벌’이었다. 이방원은 이 논리를 역이용해 반대 세력에 타격을 주고 마침내 난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보면, 태조는 절제하지 못했기에 무너졌고, 태종은 절제했기에 살아남아 강력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태조와 태종 모두 보스형 리더이자 창업군주였지만, 그들 사이의 운명을 가른 본질적 차이는 ‘명분’을 확보하고, 그 명분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보스의 경쟁력을 가르는 ‘절제’라는 덕목

오늘날에도 절제의 중요성은 변함없다. 감성 지능 이론의 대가 대니얼 골먼은 성공적인 리더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로 ‘자기 통제력’을 강조했다. 오히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약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리더의 자기 통제력이 더욱 강조된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통제의 중요성을 삶으로 입증한 대표적 인물이다. 초기 애플 시절 그는 독선적인 태도로 갈등을 빚고, 고집대로 밀어붙이다가 결국 실패를 겪었다. 시장성이 없는 무리한 제품개발을 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고, 심지어 자신에게 직언하는 사람들을 해고하려다 오히려 자신이 해고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명분과 실리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한 결과였다.

그러나 재기에 성공한 후의 잡스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강한 고집과 변덕스러움은 남아 있었지만,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폰의 디자인, 명칭 등이 잡스의 고집을 꺾고 만들어졌고, 덕분에 오늘날의 혁신을 이루는 것은 물론, 후임 CEO 팀 쿡 체제에서도 애플이 안정적으로 승승장구하는 기반이 되었다.

결국 리더십의 핵심은 보스형인지 서번트형인지와 같은 리더십의 스타일이 아니라, 목표를 위해 자신의 힘을 절제하는 역량에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 세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공정함을 중시한다. 그런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힘을 휘두르는 무절제한 보스보다, 절제하는 리더를 높게 평가하고 따르기 마련이다.

스티브 잡스가 변했듯, 태조와 태종이 다른 길을 걸었듯 자신의 힘을 절제할 때 리더의 힘은 커진다. 그래서 태종은 우리가 꼭 한 번 돌아봐야 할 ‘절제하는 리더’가 아닐까.

보스형 리더십의 전형: 절제된 카리스마 태종

불평등한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

내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 챗GPT 프롬프트

후기